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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 중국의 길을 묻는다 / 서진영 명예교수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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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 중국의 길을 묻는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 소장(이하 ‘이’): 먼저 <파워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7월 1일이 중국 공산당의 창당 94주년 기념일이기도 한데요, 먼저 이 문제부터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중국공산당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샴보우(David Shambaugh) 교수가 중국 공산당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고, 이어서 중국계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면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서진영 명예교수(이하 ‘서’): 샴보우가 중국공산당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주제의 칼럼을 통해 폭탄선언을 했지요. 사실 저도 그 기사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를 계기로 샴보우가 쓴『China’s Communist Party』를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요, 그 책의 부제가 참 흥미롭습니다. 

이: 'Atrophy(퇴화) and Adaptation(적응)’말씀이시지요?

서: 그렇습니다. 샴보우 교수의 관심사나 제 관심사, 나아가 중국을 연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비슷할 것이라 보는데, 어떻게 공산당이라는 방대한 조직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샴보우 교수의 부제에 그 결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이 방대해지면 경직되면서 퇴화가 일어나고, 반대로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면 유연성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결국 퇴화가 빠르냐 아니면 적응이 더 빠르냐의 문제입니다. 만약 퇴화가 먼저 일어나면 소련 공산당처럼 하루아침에 끝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적응이 잘 이뤄지면 위기가 오더라도 생명력을 얻으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책에서 샴보우 교수가 분명한 어떤 결론을 내고 있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샴보우 교수가 자신의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이: 샴보우 교수는 중국공산당이 시간을 정하지 않고 그럭저럭 버티는(muddling through) 상황이라고 보았는데, 퇴화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진단한 것인가요? 

서: 샴보우 교수의 결론은 당이 퇴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샴보우 교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경고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진핑(習近平) 시기의 중국 공산당은 과거와 다른 요소가 많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할까요?

서: 가령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와 같은 것입니다. 이를 살펴보려면 먼저 중국 공산당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중국 공산당은 사회과학의 상식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어 왔습니다. 중국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빈곤한 저개발 국가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했으며, 모든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했을 때에도 중국은 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하나가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이러한 성공을 이루었다면, 중국 공산당의 저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 샴보우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국 공산당의 적응력과 유연성이 어디서 왔는가에 유의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서: 그렇습니다. 제가 이 질문을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조직의 힘이나 활력은 바로 조직 내부의 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조직이 살기 위해서는 내부에 파벌투쟁도 있고 노선투쟁도 있어야 합니다. 중국 공산당사는 결국 노선 투쟁의 역사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하나의 단일노선이 당 전체를 지배하고 관철된 적은 중국 공산당사에서 없었습니다. 1921년 창당 이후로 문화대혁명까지, 나아가 개혁개방 시기까지도 언제나 노선 투쟁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일인지배를 떠올리면서 선생님의 말씀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 마오쩌둥 주석이 가졌던 힘은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일성 주석하고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마오쩌둥이 대외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가진, 신과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마오는 중요한 사안마다 자기 동료들을 설득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마오쩌둥의 단일지배체제는 중국 공산당사에서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이: 마오쩌둥 사상이 중국 공산당의 지도이념의 하나였지만, 그럼에도 마오쩌둥이 중국공산당을 홀로 지배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신데요.

서: 1945년 제7차 당 대회로 기억하는데, 그 대회를 계기로 마오쩌둥 사상이 당 강령[黨章]에 들어가고 당의 지도이념이 됩니다. 마오쩌둥이 주석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마치 마오쩌둥이 당의 완전무결한 지도자가 되어 중국 공산당이 마오쩌둥의 정당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7차 당 대회에서 부주석 자리에 올랐던 사람은 류샤오치(劉少奇)였습니다. 마오가 홍군과 게릴라 세력을 대표했다면, 류사오치는 도시 지하당 조직을 대표했다고 봅니다. 이 두 세력이 손을 잡았다는 것은 일종의 연합정권이 탄생했다는 뜻이고요. 두 세력이 권력을 공유한 셈입니다.

이: 구소련이나 북한과 같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비교사회주의의 맥락에서 유사성과 공통점이 동시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서: 조금 전에 말씀 드린 대로 중국 공산당의 역사에는 한 세력이 독점적인 지배 권력을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중국 공산당의 힘이고, 볼셰비키 정당과 다른 점입니다. 중국과 북한의 당이 갖는 역할과 기능도 여기서 달라집니다. 중국과 북한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게 발전하다가 일정한 지점에서 확연히 갈라지는데, 문화대혁명까지만 하더라도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았습니다. 사상 차원에서 중국은 자주노선이나 자력갱생 등을 강조하면서 소련과 차별화된 길을 걸었고, 자신들의 주체성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점에서는 김일성도 마찬가지였지요. 중국의 대약진 운동이나 북한의 천리마 운동도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오면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전문은 『성균차이나브리프』 제36호에 수록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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