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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체제의 권력구조 재편 / 양갑용(성균중국연구소)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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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소조(小組)가 많다. 당이나 정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종의 특수한 일을 수행하거나 임시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만드는 기구를 소조라고 한다. 소조는 기존 기구 혹은 부문과 업무가 중첩되기도 하고, 여러 부문에 걸쳐 있는 일을 수행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소조는 대부분 한시적 역할을 담당하고 해산되거나 기존 부서에 합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상설기구이거나 임의성 기구로 불린다. 소조는 그 역할에 따라 영도소조, 협조소조, 공작소도 등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일의 주체나 소재가 어디냐에 따라 당 소조도 있고 정부 소조도 존재한다. 중국의 기존 개혁이 거의 대부분 소조 기제를 통해서 이루어질 정도로 소조의 역할은 개혁과 발전의 추진과 무관하지 않다. 당 소조 가운데 당 중앙이 정책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소조는 특별히 중앙영도소조라 불리며, 여러 소조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조직이다. 중국이 당국가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컨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中央外事工作領導小組), 중앙재경공작영도소조(中央財政經濟領導小組) 등이 대표적이다. 간략히 말하면, 중국공산당 중앙에서 정책 검토를 하는 곳이 바로 당 중앙 영도소조이다.


중국정치체제 특성상 소조의 층차와 급별이 높을수록 정책 영향을 미치는 부문이 많아지고 책임자의 급별이 높을수록 소조의 협조와 집행능력이 훨씬 강해지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높은 급별 소조는 문제해결 능력이 훨씬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예컨대, 외교정책이나 대외관계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는 외교부의 영향력이나 업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외교부 수장이 성원으로 참여하는 당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가 훨씬 많은 실제적인 권력을 가지고 행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중국의 소조는 대부분 비상설기구이기 때문에 그 소재를 파악하거나 활동을 검증하기에는 적지 않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임시기구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정된 인원편제도 이루어지지 않고, 여기저기 관련 부문에서 차출, 전출 받아 일을 하거나 대부분의 성원들이 겸직이기 때문에 일의 전문성이나 연속성도 높은 수준에서 보장받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소조는 중국 정치에 있어서 당정 계통에 항시 존재하는 상설 기구인 부와 위원회를 통한 거버넌스 방식 이외에 존재하는 보충적 성격의 기구 혹은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조는 기본적으로 비상설조직이 원칙이지만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상설화된조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나 중앙재경공작영도소조의 경우 비상설기구로 출발하여 오랜 기간 조직이 유지되어 현재는 거의 상설화된 조직이 되었으며,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와 중앙재경공작영도소조는 사실상 상설기구화 되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직속기구로 편재되어 있다. 소조와 관련된 이름도 매우 다양하다. 1993년 전까지만 해도 영도소조라 불리기도 하고 임시기구(臨時機構), 비상설기구(非常設機構) 또는 열외기구(列外機構) 등으로 불렸으나 1993년 이들 기구를 통칭하여 “의사협조기구와 임시기구(議事協調機構和臨時機構)”로 불렀으며 2007년 제17기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정치보고에서“각종 의사협조기구와 그 사무기구를 간소화하고 규범화한다”는 행정관리체제개혁 방향에 따라 2008년 이후“의사협조기구(議事協調機構)”라는 통일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공중앙의 의사협조기구 역사는 비교적 장구하다. 대표적인 영도소조는 1958년 6월 10일 중앙 결정으로 설립된 재경(財經), 정법(政法), 외사(外事), 과학(科學), 문교(文敎) 등 5개 소조로 출발하였으며 조직편재는 중앙정치국과 서기처에 속하였다. 정부 업무 부문 또한 이 분류를 원용하여 정부 기구가 구성되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중앙영도공작소조 업무가 중단되었다. 당시 활동한 유일한 소조는 중앙문혁영도소조였다. 문혁 후 여러 영도소조, 예컨대 중앙재정경제영도소조,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등이 회복되었다. 동시에 여러 영도소조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1988년 1월 중앙선전사상공작영도소조(中央宣傳思想工作領導小組), 1988년 7월 중앙당건설공작소조(中央黨的建設工作小組) 등이 만들어졌으며, 1990년대 들어서도 삼강교육영도소조(三講敎育領導小組), 그후 과학발전관학습실천영도소조(學習實踐“科學發展觀”領導小組) 등 새로운 소조가 만들어졌다.


소조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중공중앙영도소조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영도소조는 당 중앙을 중심으로 관련 업무가 중첩되거나 연관되어 있는당, 정, 군, 대중사회단체 등이 성원으로 참여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협조와 협력을 위한 느슨한 형태의 협의기구 성격을 갖고 운영되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들어서면서 중앙영도소조의 핵심 성원이 구성되고 직책과 직무가 공포되면서 시진핑 체제의 새로운 권력 축으로 부상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 최상위 권력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정책결정 권한을 초월하는 핵심 공작영도소조의 출현과 성원 구성은 시진핑 체제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상 유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수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쟁명(爭鳴)』보도를 인용한 몇몇 인터넷 매체들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3월 18일 중공중앙 정치국 제19차 회의에서 중국 당국은 중대결책결정(重大決策決定), 긴급응변(緊急應變), 군사국방(軍事國防), 경제 및 외사(經濟及外事) 등 5대 핵심 결책공작영도소조의 성원, 직책과 직능을 발표하였다. 이 5개 공작영도소조는 중국공산당, 정부, 군, 경제, 외교 등 대사(大事)의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 권한을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관련 보도에 의하면 지난 2013년 3월 제12기 전국인대를 통해서 국가부주석에 임명된 리위안차오(李源潮)가 중대결책결정(重大決策決定), 임기응변(緊急應變), 군사국방(軍事國防), 외사(外事) 등 4개 영도소조의 부조장을 맡고, 특히 중대결책결정소조(重大決策決定小組)와 긴급응변소조(緊急應變小組)의 판공실 주임을 맡는 등 일곱 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장더장(張德江),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 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와 같은 권력의 재분배와 중앙영도소조의 위상 강화는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소위 장쩌민(江澤民) 계열로 분류되는 세 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당내 중요 정책결정에서 주변화 되고 있으며 특히 류윈산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류윈산은 앞서 언급한 다섯 개 핵심 중앙영도소조 가운데 조장이나 부조장을 맡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표 1>에 의하면, 5개 핵심 영도소조 가운데, 시진핑은 4개 소조 조장, 리커창(李克强)은1개소조 조장, 4개 소조 부조장, 리위안차오는 4개 소조 부조장, 제1, 제2소조 판공실 주임, 장더장은 2개 소조 부조장, 장가오리는 1개 소조 부조장을 맡는 데 비해서 류윈산은 5대 핵심 중앙영도소조의 직무를 맡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치국 위원인리위안차오가 정치국 상무위원인 장더장, 장가오리, 류윈산의 지위를 압도하는 형세이다.




지난 제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와 제18기 1중전회 인사결과를 보면, 후진타오(胡錦濤)의 두드러진 약진이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정치국 위원을 맡고 있던 류옌둥(劉延東)과 리위안차오, 왕양(汪洋) 등이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지 못하면서 후진타오가 장쩌민 세력에 밀렸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중국 관련 기관과 전문가의 예상과 달리 지난 3월 제12기 전국인대 국가간부 인선에서 류옌둥과 왕양은 국무원 부총리로 기용되었다. 즉, 국무원총리 리커창과 상무 부총리 장가오리 밑에 왕양이 포진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특히 리위안차오는 지난 1998년 이후 15년 만에 정치국 상무위원이 맡아오던 국가 부주석 자리를 정치국원 지위를 가지고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국가부주석이 맡는 중앙외사영도소조 등 의사협조기구의 부조장을 맡게 되면서 리위안차오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번 5대 핵심 영도소조의 재편 결과 리위안차오는 국가부주석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4개 영도소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됨으로써 중국의 주요 정책결정 구도에서 최상위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성균차이나포커스』와『成均中國觀察』과월호에서 후진타오의 인사구도를 권력관계의 재조정을 위한 발판으로 보고 당대회와 전국인대 인선 결과는 후진타오의 전략적 선택과 장기포석의 일환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즉 후진타오는 지난 당대회 인선에서 차기와 차차기 권력 안배를 위하여 이른바 자파 세력으로 불리는 세명의 정치국원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리지 않은 대신에 후춘화 (胡春華)나 순정차이(孫政才) 등 제6세대 선두주자를 정치국원으로 승진, 발탁하였다. 후진타오는 이들을 광둥(廣東)이나 충칭(重慶) 등 지방 현장에 포진시켜 현재 현장 경험을 쌓게 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국원 진입은 이런 의미에서 세 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승진 기용을 양보한 정치적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위안차오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니라 여전히 정치국원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이번에 발표된 이른바 5대 핵심 중앙영도소조에 리위안차오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홍콩『쟁명』보도에 의하면 2013년 3월 12일 밤 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퇴임한 후진타오(胡錦濤), 우방궈(吳邦國), 원자바오(溫家寶) 등이 열석권을 가지고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3년 3월 18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제의(提議)로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5개 핵심 중앙영도소조 결정이 통과되었다. 국가부주석 리위안차오, 중앙군사위원회 상무부주석 판창룽(範長龍), 중앙판공청 주임 리잔수(栗戰書) 등이 출석권 혹은 열석권을 가지고 정치국 상무위원회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공산당 회의 방식에 있어서 출석권이란 관련 회의에 표결권을 갖고 참석하는 것을 말하며, 열석권이란 회의에 배석할 수는 있으나 의결권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지난 2013년 3월 12일 개최된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의에 후진타오나 우방궈, 원자바오 등은 퇴임지도자 신분으로 표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열석권을 가지고 참석하였다. 열석권이라 할지라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논의되는 사항에 대하여 청취가 가능하며 의견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최고 정책결정 모임에 참석이 가능하다는 점은 리위안차오의 당내 지위가 매우 높다는 점을 반증하며, 이번 5개 핵심 중앙영도소조의 조직 성원 구성 현황은 이를 사실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인선은 시진핑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작년 11월 제18차 중국공산당 1중전회 정치국 상무위원 인선 결과를 보면 장쩌민 계열의 약진(장더장, 장가오리, 류윈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진핑이나 리커창은 이미 정치국 상무위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고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최고지도자로 기용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정치국 상무위원은 보시라이(薄熙來) 사건, 계파 안배, 원로들의 인사개입, 연령문제와 직무 근속기간, 공직 경험과 직무 성과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잡하고 다양하게 혼재된 상황 속에서 여러 예측이 난무한 인선이었다. 당 간부 인선 결과 소위 장쩌민 계열로 간주되는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으나, 실권 차원에서 보면 장더장이나 장가오리, 류윈산 등은 군권과 당무계통 실권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시진핑과 리커창의 실권이 강화되면서 장쩌민 계열 권력은 오히려 주변화되었으며 그 결과 류윈산이 아닌 정치국 위원 지위를 가진 리위안차오가 국가부주석에 당선된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는 후진타오의 전략적 선택과 다중인선 포석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2013년 3월 14일 제12기 전국인대에서 리위안차오는 국가부주석으로, 왕양은 국무원 총리로 발탁되어 후진타오의 건재함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시진핑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정치국 상무위원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의사협조기구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 강화하여, 그 핵심 역할을 리위안차오에게 맡김으로써 시진핑과 리커칭의 조합(習李組合)을 새로운 권력 축으로 확고히 하고 장쩌민 계열을 주변화 하는 권력 재분배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 이번 5대 핵심 중앙영도소조의 재편 결과이다. 즉 시진핑은 5대 핵심 소조를 이용하여 정치국 상무위원회보다 상위 권력을 형성하였으며, 리위안차오 등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출석시키거나 열석할 수 있게 하여 장더장, 류윈산, 장가오리 등 장쩌민 계열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포위하는 구도를 만들어서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정치국 위원 지위에도 불구하고 리위안차오의 국가부주석 기용에 대하여 세간의 평가는 명예직이거나, 후진타오를 배려한 인사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진핑이 주도한 이번 5대 핵심중앙영도소조 성원 편재를 보면 리위안차오의 역할과 권한은 단순 명예직이나 의전 차원에 머무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핵심 영도소조라 불리는 5개 영도소조 가운데 리위안차오가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시진핑 권력 공고화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리위안차오의 국가부주석 기용은 시진핑이 결정한 것이다. 제12기 전국인대와 전국정협 회의 이후 국가간부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중공 당내 최고 권력 조정과 배분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리위안차오, 판창룽, 리잔수 등 핵심 인원들이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 출석권이나 열석권을 가지고 참석하게 되면서 시진핑과 리커창의 지위가 한층 공고화되어 가는 추세이다. 이 과정에서 리위안차오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할 것이며, 시진핑은 이를 잘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 재편과 공고화를 과감히 추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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