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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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주주의 / 왕샤오광(홍콩중문대학)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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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의 본의는 인민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인민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실현 형식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세계 각 문화에 속한 인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답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는좋은것’이라고말하지만,‘ 좋은것’으로간주되는‘민주’가무엇인지는서로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모두가 민주를 좋아하고, 또한 그들이 지지하는 민주가 동일한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구의 적지 않은 이들은 민주의 정통이 자신들에게 있고, 민주에 대한 유일하고 정확한 이해는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문화적 패권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경험 연구들은 동아시아의 민주관에 독특한 면이 있으며, 유가문화권의 민주관도 독특하다고 강조한다. 

민주에 대한 이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형식 차원에서 민주를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 차원에서 민주를 이해하는 것이다. 전자는 민주의 특징이라 불리는 것들에 주의하는 반면, 후자는 인민 군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결과물이 정책을 통해 출현하고 있는지에 주의한다. 많은 조사는 민주에 대한 중국의 이해가 후자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내용과 실질에 초점을 맞춘 민주를‘대표형 민주(representational democracy)’라 부른다면, 형식과 절차에 주의하는 민주는‘대의형 민주(representative democracy)’라 할 수있다. 대의형 민주와 달리 대표형 민주는‘대표자(representative)’가 아니라‘대표(representation)’가 그 핵심 개념이다. 『대표의 개념』을 저술한 바 있는 한나 핏킨(Hanna Pitkin)은‘대표’의 함의를 정의하면서 공중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 지적하였다. 그리고 대표의 주체가 자유와 경쟁의 선거를 통해 정해지는 것은 이와는 다른 성격의 문제라고도 하였다. 대표형 민주의 기본 가설은 민주가 다양한 대표 메커니즘을 통해 실현될 수 있으며, 반드시 선거를 통해 등장한 ‘대표자’가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정치제도가 민주의 표준에 부합하는가의 여부는 자유와 경쟁의 다당제 선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 이론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민주의 핵심 특징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시민들의 바람에 응답하고, 모든 시민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대표자가 어느 정도로 유권자의 대언자 역할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정부가 대중의 바람에 얼마나 응답할 수 있는가이다. 달의 이 표현은 민주적인 정치 제도를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한 가지 표준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달이 언급했던‘바람(preferences)’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는 이를 사람들의 주관적인 요구(wants)와 혼동하곤 한다. 그러나 정부는 언제 어디서든 대중의 끝없는 욕망을 채워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바람’은 대중의 객관적인 필요(needs)이며, 그 필요와 관련해 제기되는 의견과 건의를 포괄한다.

중국식 대표형 민주의 이론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중국은 이미 대표형 민주의 이론적 틀을 만들어 왔다. 네 가지가 주요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질문의 형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를 대표하는가? 둘째, 누가 대표하는가? 셋째, 무엇을 대표하는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대표하는가?

(1) 누구를 대표하는가?
중국식 대표형 민주 이론은 이 질문의 대답으로 인민을 제시한다. 모든 중국인들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이야기하였던“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언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중국 공산당의 주지(主旨)이며, 중난하이(中南海)의 신화(新華)문과 동(東)문 가림 벽에 새겨진 문구이기도 하다.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인민이 피동적으로 서비스를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 함의는 인민과 함께 공동으로 노력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구를‘인민’이라 부르는가? 어느 국가에서든‘인민(혹은 시민)’이라는 개념의 함의와 외연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전에 마오쩌둥은 당시 자신이 이해하고 있던‘인민’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른바 인민 대중은 노동자 계급과 농민 계급, 도시 소자산 계급을 가리키며, 또한 제국주의와 국민당 반동 정권, 그리고 그 대리인이었던 관료자산계급(대자산계급) 및 지주계급으로부터 핍박과 억압을 받았던 민족자산계급을 가리킨다. 노동자와 농민(군복을 입은 농민), 그리고 기타 노동 인민이 그 주체이다.”이로부터 마오쩌둥은 줄곧‘인민’을 하나의 역사적이고 변동적인 정치적 범주로 간주하였다. 즉 한 나라의 모든 인구를 광범위하게 가리켰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이해한 인민 주체에는 언제나 생활수단 생산에 종사하는 광대한 노동 군중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개혁개방 이후‘인민’의 의미와 외연에 다시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 주체는 여전히 광대한 노동 군중이고, 동시에 사회주의와 조국통일을 수호하는 애국자이다. 중국혁명과 신중국의 가장 큰 역사적 공헌은 수억에 이르는 일반 노동 인민 군중을 처음으로 정치무대에 등장시켰다는 사실이다. 

대표의 대상이 인민임을 강조하는 것은 자유주의 입장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사전 속에는 인민이 없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공동체나 계급과 같은 집단의 개념이 부재한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있어야 비로소 대표의 개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2) 누가 대표하는가?
서구의 주류 대의제 이론에서는 행정관처럼 선출을 통해 탄생한‘대표자’에게만 다른 사람들을 대신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 자격이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정치 체제이든 선출과 무관한 관료가 있게 마련이다(예컨대‘사무관’). 현실에서는 그들이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래서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책임이 없다면, 이는 규정된 대로 일만 잘 처리하면 만사형통이라는 것과 크게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대표하는가의 문제에서 대표형 민주는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선출된 대표자뿐 아니라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타 관원들이 모두 포함된다. 중국은 각종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을‘간부’라 부른다. 이 모든 간부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간부는 레닌이 말한‘선봉대’에 속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엘리트’라는 뜻이 아니다. 나아가‘엘리트’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이와 달리 인민의 이익을 대표해야 할 책임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광대한 인민 군중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개조해야 한다. 왜냐하면“인민, 인민이 있기 때문에 세계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군중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기 때문에 각급 간부들은“간혹 우스울 만큼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인민 군중에게는 무한한 창조력이 있다.”따라서 각급 간부들은 반드시“일하면서 배워야 하고, 또한 배우면서 일해야 한다.” “자신이 마치 군중의 주인인 것처럼, 혹은‘하등인’의 머리 위에 올라선 귀족인 것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모르면서 억지로 아는 척해서도 안 되고, 아래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하급 간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먼저 학생이 되어야 그 후에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먼저 하급 간부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그 후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이는‘수권론’이나‘문책론’등으로 대변되는 대표자 구상(가령 일반 사람보다 뛰어난 정치 엘리트)과 질적으로 매우 다른 것이다.

(3) 무엇을 대표하는가?
서구 대의제에서는 의견 개진의 메커니즘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혹은 선호)을 전하여 대표자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정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 바람’이라는 것은 비교적 모호한 개념인데, 여기에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요구도 포함될 뿐 아니라 그들의 객관적인 필요도 포함될 수 있다. 만약 여기서 약간의 계급 분석을 더할 수 있다면, 의식주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어 있는 사회 상층은 주로 자신들의 주관적인 요구(예컨대 감세나 동성 결혼, 표현의 자유)를 내비칠 것이고, 반면 주머니 사정이 곤란한 사회 하층은 객관적인 필요(가령 취업이나 의료, 교육, 주택 등의 생활 보장)를 드러내리라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사회 하층이 제기하는 객관 필요 역시 사회 상층의 객관 필요이기도 하다. 사회 상층도 의식주와 교육, 의료, 연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그들의 경제적 여건이 그러한 필요를 지탱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객관적인 필요라는 사실이 쉽게 은폐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 하층의 필요는 전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적인 필요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사회 상층의 요구는 전체 사회 구성원의 참된 필요가 아닐 수 있다. 또한 필요와 요구 사이에는 한 가지 더 구별되어야 할 지점이 있는데, 전자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비교적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반면, 후자는 단기간에 얼마든지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민이 주인이 되고 광대한 인민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서 대표형 민주는 인민의 객관적인 필요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임의로 제기되는 수요나 혹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어떤 관점이 대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객관적인 필요도 불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발전의 수준이 비교적 낮을 때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필요이다. 그러나 발전 수준이 높아지면 이러한 필요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다른 필요의 중요성이 올라가게 된다. 가령 좀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좀 더 예쁜 옷을 입으며 좀 더 빠르고 편하게 움직이고 좀 더 넓고 쾌적한 곳에 사는 것 등이다. 병이 생기면 의사가 있으면 좋겠고 나이 들어 늙으면 기댈 곳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인민의 기본적인 필요를 대표한다는 것도 결국 시대와 함께 변한다. 따라서 각급 간부들은 사회 각 계층이 제기하는 다양한 요구를 청취하는 동시에 사회 기층에서 변화하는 그들의 필요를 끊임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대표는 하나의 능동적인 구성의 과정이다.

(4) 어떻게 대표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군중노선이 공산당의 전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중노선 역시 중국 특색을 가진 대표방식이다. 중국 역사에서 수억 인민이 처음으로 정치적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공산당이 군중노선을 자신의‘근본적 정치노선’과‘근본적 조직노선’으로 표방했기 때문이다(제7차 당 대회에서의 당장 수정에 관한 류샤오치(劉少奇)의 보고를 참조). 그리고 수억 명 군중의 각성이 있어야 민주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브랜트리 워맥(Brantly Womack)이 군중노선과 그에 근거한 중국 체제를‘준(准) 민주체제(Quasi-democratic system)’라 칭한 것은 적절한 설명이다. 군중노선이 중국식 대표형 민주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대의민주에서는 대표자와 대중 간의 관계가 주로 경선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일단 당선이 되면 대표자는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정당성을 갖게 되기때문에 재량권을 확보하게 되고, 자기 의지가 유권자의 의지를 대신하게 된다. 만약 대표자가 임기 동안 대중들과 접촉을 이어간다면, 이 또한 유권자의 호감을 얻어 다음 임기 재선을 노리는 것이기에 경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선거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선거기반과 무관한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혹 그것이 대중에게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대표자에게 있어서는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이야말로 진정한 투쟁의 대상이자 접촉이 필요한 대상이다. 그러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군중노선은 이와 다르다. 각급 간부들은“인민 대중을 사랑하고, 군중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딜 가든 그곳의 군중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군중 위에 군림하지 말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군중 사이로 들어가고, 군중을 배우며, 그들의 경험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방법을 만들어 군중에게 다시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군중이 이를 실행하도록 호소하고, 군중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군중들에게 해방감과 행복감을 안겨주어야 한다.”여기에서 말하는 군중은 인민 대중이며, 인민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민은 우선 공농병과 기타 노동인민을 가리킨다.

대의민주의 폐단을 보완하기 위해, 일부 서구의 진보학자들은 참여민주(participatory democracy)를 제창하고 있다. 일반 대중이 더 많이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 기회와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의 수준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는 이 참여민주와 비교해보아도 군중노선의 특색은 여전하다. <그림 1>은 군중노선과 대중참여를 도식으로 비교한 것이다.


<그림1>은 군중노선과 대중 참여의 이상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양자의 첫 번째 차이는 화살표 방향에 있다. 대중 참여의 화살표는 이익 및 이익 관련 집단으로부터 정책결정자를 향해 간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결정과정 중에 이익 관련 집단이 개입해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것은 정책결정자가 반드시 이를 반영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그림1>의 A 참조). 군중노선에서는 화살표가 정책결정자에서 출발해 이익 관련 집단을 향해 나간다. 이는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책결정자가 반드시 능동적으로 이익 관련 집단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책결정자가 저버려서는 안 되는 책임이기도 하다(<그림 1>의 B 참조).

양자 간의 두 번째 차이는 계층 분석 여부에 있다. 대중 참여는 자주 다원주의적 가설을 함축하고 있다. 모든 이익 관련 집단들의 세력이 균등하며, 그들이 모두 평등하게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기에 정치적 균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림 1>의 A 참조). 군중노선은 각종 자원을 점유한 강세 집단과 자원이 부족한 약세집단을 구분한다. 군중노선을 관철하는 이상적 상황은 정책결정자가 이익 관련 약세 집단을 더욱 많이 접촉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들이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정책결정과정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군중노선은 결코 무사공평의 노선이 아니며, 일반 노동자에 편향된 노선이다(<그림 1>의 B 참조).


그러나 현실 속 대중 참여와 군중노선은 아마도 이상적인 그림과 거리가 멀 것이다. 대중 참여의 경우 서로 다른 사회계층들은 참여 능력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어떤 계층은 금전, 인맥, 지식 등의 차원에서 우위를 점유할 수 있고, 매우 강한 정치적 참여 욕구를 바탕으로 정책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다른 어떤 계층은 먹고사느라 바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기가 힘들어진다(<그림 2>의 A 참조). 대중 참여의 불평등성은‘참여’의 개념을 너무나도 무색하게 만든다. 그 필연적인 결과는‘필요’가 아닌‘요구’가 강조되는 것이다. 군중노선이 관철되려면 각급 간부들의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서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적극적으로 인민 군중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만일 간부의 군중의식이 박약하고 군중 관점이 약화되어 있었다면, 혹 그들이 밖으로 나간다 해도‘부를 사랑하고’영향력이 강한 사회 집단과 가까이 지낼 것이고, 하루 종일 경제활동에 참여하거나 테이프 커팅 식에 참여할 확률이 높다. 기업가들과 먹고 마시며 몰려다니는 것이다. 심지어 거간에 관여하면서 뇌물을 받아 챙길 수도 있다. 능력이 약한 집단과 접촉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 되거나 혹은 정치적 쇼가 되고 만다(<그림 2>의 B 참조). 이것은 군중노선의 약점으로, 간부 개인의 의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군중노선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각급 간부들이 기층 인민과 자주 교류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방식이 있어야 한다. 군중노선을 힘껏 선전하고, 군중노선의 현실화 방식을 제도화하며, 군중노선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고, 모두가 그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깊이 이해한다면, 각급 간부들도 그 기대와 요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간부들이 군중노선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은 군중노선과 대중 참여를 결합하는 것이다. 비록 군중노선과 대중 참여는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상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중 참여가 갖는 비교우위는 민의를 대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며, 정책결정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반면 군중노선이 갖는 비교우위는 간부들이 군중의 관점을 학습하고 인민의 삶을 이해하면서 인민의 지혜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양자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서로 결합된다면 훨씬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그림 3> 참조). 가령 정부는 간부들의 군중노선 관철을 촉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에게 정치적 힘을 부여하여(empowering) 그들이 조직적으로 정책결정에 참여케 할 수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노동자들이 제시하는 요구가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서로 다른 사회 집단의 합리적인 의사표시가 무시되지 않을 수 있다.



중국식 대표형 민주의 실천

군중노선은 중국식 대표형 민주의 이론적 초석일 뿐 아니라 중국 대표형 민주의 주된 경험 중 하나이다. 마오쩌둥은 17대 정치보고에서 군중노선이 다른 정당과 구별되는 중국 공산당만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라 강조한 바 있는데, 혁명기뿐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기간에도 1세대 지도부는 군중노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아주 긴 시간 동안 군중노선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있었다.“ 군중을 믿고”,“ 군중에 의지하며”,“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한다는 공식적인 표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빈도수는 크게 하락해 왔다), 많은 지방에 군중노선의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2011년을 전후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대중 참여의 압력이 상승하였고, 이것이 군중노선을 회복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2011년은 중국공산당이 창립 9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는 ‘7·1’강연에서“인민에서 시작하고, 인민에 뿌리내리고, 인민에게 봉사하는 것은 우리 당이 불패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뿌리”라고 하였다.“ 공산당원은 모두 인민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인민을 스승으로 삼아 정치적 지혜를 성장시키며, 집권능력을 강화해 인민의 창조적 실천 가운데 뿌리내려야 한다”고도 하였다. 충칭(重慶)과 광둥(廣東), 산시(山西), 쟝쑤(江蘇), 후베이(湖北), 시짱(西藏), 윈난(雲南) 등 지방에서는 군중노선이 제기되면서 제도화와 표준화의 길이 열리기도 하였다. 2011년 말, “기층으로 들어가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다. 허베이(河北)와 저장(浙江), 안후이(安徽), 샨시(陝西), 지린(吉林), 깐수(甘肅), 신장(新疆)의 성급 위원회 지도자들도 기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군중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대면교류에 나섰다. 어떤 경우에는 대규모 간부를 선발해 현지에 머물게 하면서 군중의 마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하였다. 2012년 이후에는 칭하이(靑海)와 광시(廣西), 닝샤(寧夏) 등의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2012년 중공 18대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였는데,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언제나 군중 사업을 중국 공산당의 생명으로 보았다. 시진핑은 푸젠(福建)성 닝더(寧德)시 지방 당 서기로 있을 때,‘ 네 가지 기층(민원접수, 현장업무, 조사연구, 정책선전을 기층으로 보냄)’을 간부들의 일상 업무 메커니즘으로 규정하였다. 2011년 성급 지도자 간부 학습반의 폐막식에서는 솔선수범해 군중의 관점을 학습하고, 군중의 입장을 확고히 하며, 군중노선을 견지하고, 군중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혁신적인 군중업무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18대 전날, 2012년 지방 성급 주요 간부 학습반의 폐막식에서는“우리 공산당이 진심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기본목표를 견지하고, 군중으로부터 오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는 노선을 견지하며, 당의 모든 업무가 군중의 뜻과 이익,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구현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이것이 군중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의 장점이며 우리 당의 최대 장점”이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중공 18대 보고의 초안 작성 책임자이기도 하였는데, 보고서 중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인민’이었다. 145번이나 이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민에 대한 그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8대 폐막 이후 중앙정치국은 각급 간부의 인민의식 강화를 위해서「업무태도 개선 및 군중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8개 규정」을 공포하였다. 중앙당교와 국가행정학원, 중국연안간부학원 등도 군중업무를 간부 양성의 중요과정으로 삼았다. 2013년 4월 19일, 중공중앙정치국은 그해 하반기부터 조를 나눠 당의 군중노선에 대한 현장교육활동을 진행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림 4>는 군중노선의 반등 추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이두(百度) 지수는 웹사이트 검색과 신문 검색을 기초로 과거 일정 기간 동안 특정 단어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중국 사회의 이슈와 네티즌의 관심사를 파악해볼 수 있다. <그림 4>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2011년 이전에는‘군중노선’의 바이두 지수가 대단히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수가 급격히 상승하였고, 지난 18대에서 최고점을 찍었다.


과거 몇 십 년의 실천 속에서 군중노선은 3가지 메커니즘으로 발전하였다. 첫째는 민정(民情)을 이해하고 인민의 지혜를 얻는 메커니즘인데, 여기에는 조사연구와 중점관리, 참여조사, 사례연구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메커니즘은 군중의 관점을 학습하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 어려운 점을 헤아리거나 삼동(三同), 곧 함께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되며, 하급기관에 권력을 이양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간부가 군중노선을 이해하고 군중노선을 실천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여기에는 정기적인 질책과 자아비평, 비정기적인 정풍운동 등이 포함된다. 이 세 가지 메커니즘이 함께 작동할 때 군중노선은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군중노선의 이행 메커니즘 중에서 조사연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군중노선의 논조가 자취를 감추었던 시대에도 그 전통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이는 바이두 지수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그림 5> 참조).


새로운 지도부의 좌장이라 할 수 있는 시진핑은 조사연구에 열정적이었다. 시진핑은 샨시성 옌촨(延川)현 원안역(文安驛)공사 량자허(梁家河)대대의 당 지부 서기를 역임할 때부터 허베이성 정딩(正定)현 위원회와 샤먼(夏門)시 위원회, 닝더시 위원회, 푸저우시 위원회, 푸젠성 위원회, 저장성 위원회, 상하이 위원회, 그리고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조사연구를 열정적으로 진행하였다. 2002년 10월, 저장으로 막 부임을 했을 때에는 조사연구를 더욱 확대하여 부임 초 2달 동안 업무의 절반을 외부 조사연구에 소요하였고, 9개월 만에 전체 90개 현과 시, 구 중 69개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2005년에는 30차례에 걸쳐 조사연구를 진행하였고, 조사연구의 일수가 117일이나 되었다. 저장의 모든 지역을 5년에 걸쳐 돌아보기도 하였다. 2007년 3월 27일, 그는 상하이시 위원회 서기에 부임하였는데, 불과 3일 뒤인 3월 31일 푸동(浦東) 지역에 대한 제1차 연구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6개월도 채 안 되어 상하이시의 19개 구와 현을 모두 조사하였다. 시진핑은 “현 위원회 서기라면 반드시 모든 촌을 시찰해야 하고, 지방과 시 위원회라면 모든 향과 진을 시찰해야 하며, 성 위원회 서기라면 모든 현과 시, 구를 시찰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18대 중공중앙 총서기에 올라선 이후에도 시진핑은 기층에 대한 조사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사실 시진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공중앙 정치국의 역대 상무위원들이 모두 그렇게 해오고 있다.

학자나 싱크탱크의 조사연구와 비교해보면, 간부들의‘조사연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조사연구는 정책결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이다. 시진핑이 언급했던 것처럼, “정책결정의 모든 과정에는 반드시 조사연구가 뒤따라야하고, 그래야만 진정한 정책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

둘째, 조사연구의 주체는 정책결정자 자신이다. 시진핑이 강조했던 것처럼, 각급 지도기관의 핵심 책임자 자신이 직접 조사연구에 나서야 한다.“ 각종 문제, 특히 중요 문제의 정책 결정에서는 결국 핵심 담당자가 모든 의견을 수렴해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핵심 담당자가 직접 조사에 나서야 한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체험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지도 집단 내부의 통일된 인식과 의견을 도출하기 쉽고, 결정도 더 쉬워질 수 있다.”중공중앙 판공실은 2010년「학습형 당 조직 건설 추진에 관한 의견」을 배포하였는데, 여기에는‘건전한 조사연구 제도의 확립’을 위한 요구가 담겨 있다. 성급 간부는 매년 최소 30일, 시·현 급 간부는 최소 60일, 그리고 지도 간부는 매년 1-2편의 조사연구보고를 작성해야 한다. 

셋째, 조사연구의 주제는 수시로 변화할 수 있지만, 대부분 정책결정자의 책임 영역에서 전면적이고 전략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아가 정세 변화에 따른 새로운 상황, 새로운 모순, 새로운 문제, 새로운 도전, 새로운 과제가 자주 조사연구의 주제가 된다.“ 과학적 발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 문제나 인민 군중이 관심을 표하는 이슈, 당이 직면한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문제, 발전 및 안정과 관련되는 중요 문제, 세계 정치경제 영역에 일어나고 있는 중요 문제 등이 조사연구의 대상이 된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를 도모하면서 군중의 창조적인 경험을 총괄하고, 각 영역에서 발견되는 규율을 찾아 그 대응책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특히 군중이 가장 원하고, 가장 필요로 하며, 가장 걱정하고, 가장 분개하는 문제를 적극 조사하여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넷째, 조사연구의 대상은 정책결정과 관련해“사회경제 현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경험 많은 중급 및 하급 간부”가 포함되며 “일반국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관뿐 아니라 기층도 조사해야하고, 간부와 함께 군중을 조사해야 하며, 전형적인 사례를 통해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업무 성과가 양호한 지역뿐 아니라 다양한 어려움 및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역도 조사해야 한다. 기층과 군중, 전형적인 사례 및 곤란 지역이 조사연구의 핵심 대상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섯째, 조사연구의 태도는“거드름을 피우지 말고 초등학생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지도자가 조사연구를 진행할 때 거드름을 피우지 말아야 하며 모든 정력을 쏟아 논밭과 공장, 광산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중과 함께 문제를 토론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정서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그들의 고통을 체감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종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군중으로부터 칭찬과 비판을 모두 들을 줄 알아야 하며, 군중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 그래야 진정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실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참된 지식을 확보할 수 있다.”

여섯째, 조사연구의 목적은 대중의 정서를 이해하고 대중의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정책 결정에 있어서 대중의 정서를 이해하는 목적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이고, 대중의 지혜를 받아들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일곱째, 조사연구의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주로‘나가거나(방문, 현장 체험 등)’혹은‘초청(간담회 등)’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나가든 초청하든 그 핵심은 말단 조직의 간부와 접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사무실에서는 듣기 어렵고 쉽게 볼 수 없는,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확인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과 사고, 그리고 대책도 모색할 수 있다.”물론 조사연구의 방식은 시대와 함께 발전한다. 전통적인 방식을 포기할 이유는 없지만, “조사연구의 경로를 확대하고 조사연구의 수단을 다각화하면서 조사연구의 방식을 혁신할 필요는 있다. 문헌조사와 통계조사, 표본조사, 전문가 조사, 네트워크 조사 등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연구방법도 배워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현대적인 정보기술을 조사연구 분야에 도입해 조사연구의 효율성과 과학성을 제고할 필요”도 있다.

여덟째, 조사와 연구를 병행할 수도 있다. 성실한 연구가 없다면 조사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고, 어렵게 수집한 자료가 버려질 수도 있다.“ 조사연구의 근본 목적은 문제 해결에 있기 때문에 조사가 마무리되면 반드시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의견 교환과 비교, 피드백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흩어져 있는 인식을 체계화하고, 얕은 인식을 심화하며, 사물의 본질적인 규율과 문제 해결을 위한 정확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상의 여덟 개 특징이 보여주는 것은 군중노선 중에서도 조사연구가 그 정수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대중을 위한 것이고, 모든 것은 대중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 군중에서 나와서 군중으로 가야한다.”조사연구에서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네 가지 문제, 곧 누구를 대표하는가, 누가 대표하는가, 무엇을 대표하는가, 어떻게 대표하는가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다. 

나가며

이 글은 대의형 민주와 비교하면서 대표형 민주의 이론과 중국에서의 실천양상을 설명하였다. 어쩌면 국내외 적지 않은 이들에게는 중국의 정치제체가 내세우는 민주가 여전히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이미 역사는 끝났고, 민주가 선택할 수 있는 형식은 대의형 민주일 뿐이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중국 인민들은 중국이 시행하고 있는 것도 민주라 믿는다. <표 1>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 대중의 26.9%가 중국 정치제도가 완전한 민주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50.4%는 중국의 정치제도가 전반적으로 민주적이며 몇 가지 작은 문제들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77.3%의 대중이 중국을 민주적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 대중의 1.7%에 불과하다.


중국인들은 왜 자국의 정부가 민주적이라고 인식할까? <표 2>에서 보는 것처럼, 중국인들은 국민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강하다”고 답한 중국인은 28.2%로 나타났고, “비교적 강하다”고 인식한 사람도 59.9%로 나타났다. 이 두 수치의 합계가 무려 88.1%에 이른다.


중국인들은 실질적인 민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중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 정부가 비교적 잘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이 중국 정부를 민주적이라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들도 모두 이를 입증해준다. 미국의 한 연구는“정부에 대한 중국 국민의 높은 신뢰가 대중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아시아 민주 동태조사’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타이완의 주윈한(朱雲漢)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중국 정부가 약자를 보호하고 기본적인 생필품을 보장하는 의지와 능력을 분명히 드러내”보인다고 평가하였다. 나아가 “안정적으로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 법치를 강화하자 국민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국민들이 정권을 지속적으로 신뢰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아울러 그는 “독특한 문화적 전통과 혁명 유산, 그리고 전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토대로 중국 정부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담론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자기만의 정치 현대화 노선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왕샤오광(王紹光) / 홍콩중문대학 (번역: 김도경, 서정경, 이주영, 양철 / 성균중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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