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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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의 중국 패러다임 / 돤더민(베이징대)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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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민주와 지역 특색과의 관계는 학계에서 핫 이슈이다어떤 학자는 우리가 단지 민주 그 자체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민주와 지역 특색과의 결합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모든 제도 혹은 관념은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야 하며그렇지 않을 경우 자연환경 및 기후와 맞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水土不服].” 따라서 민주는 좋은 것이다를 강조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민주와 중국 특색과의 결합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그런데 일각에서는 민주와 민주의 특색은 주종 간의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민주를 근간으로그리고 특색을 보조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만일 주객이 전도되면 일부 비민주적인심지어 반민주적인 요소들이 민주라는 미명을 입게 될 것이고그렇다면 민주정치의 목표 실현은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민주를 하나의 제도로 본다면민주는 서로 다른 각 지역의 풍토와 인정(人情), 사회국면에 잘 부합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고그렇다면 민주에서 일종의 구체적인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처사가 아니다한편으로 민주는 정치적 참여나 혹은 권력에 대한 구속 등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만일 지역 특색에 대한 강조가 이러한 기본적 요구를 덮어버리거나 심지어 부정한다면 민주는 그저 이름만 그러할 뿐 유명무실할 수 있다다른 한편으로 민주를 더욱 잘 실천하려면 각지의 특수한 상황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어떻게 본토의 상황에서 출발하여 민주정치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지가 민주를 실현하는 핵심인 것이다.

 

민주적 제도와 패러다임

 

정치제도로서 민주가 지향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생활 형식이다위커핑(俞可平)은 한 때 민주가 좋은 것라 평하여 많은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데탕야린(唐亚林)은 그 원인에 대해 이 사회가 일반상식과 아주 멀리 떨어져있거나 혹은 일탈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제도나 혹은 생활방식을 지향할 때 흔히 그것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갖곤 한다사람들은 현실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제도 개혁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듯하다대혁명 이전의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사고방식이 유행했었다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묘사한 대혁명 이전의 이른바 문인정치를 보면정치경험도 없고 정치적으로 책임 질 필요도 없는 문인들이 사회의 기원정부의 본질 그리고 인류의 원시적 권리에 열중하면서 정치적 문제에 접근하였고이성적인 각도에서 완전히 새로운 설계 및 제도적 안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선한 의도를 갖겠지만복잡한 현실을 놀라울 정도로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다토크빌은 이렇게 적고 있다. “현실사회는 여전히 전통적이고 혼란스러우며 비공식적인 구조로 이뤄져있다법률은 여전히 천태만상이고서로 모순되며등급이 삼엄하고사회적 지위는 바뀌기 어려우며부담과 임무는 불평등하다이러한 현실사회에서 하나의 허구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간단하고 협력적이며 일치되고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에서 중국 특색을 강조한다는 것은 중국에서의 민주를 강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즉 구체적인 상황을 결합한 민주의 중국 패러다임이어야 하는 것이다여기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상황이란 중국의 민심인구규모국토면적구성역사 등을 모두 포함한다그러나 이렇게 제도와 패러다임을 서로 결합하는 논술방식은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양자가 서로 모순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패러다임이나 특색을 강조할 때 우리는 이미 그것들은 어느 정도 부차적인 것이고 제도로서의 민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식이든 프랑스식이든아니면 민주식 민주이든 그 기초는 모두 같다즉 모두 민주이다그렇다면 서로 다른 민주 패러다임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반대로 우리가 중국식에 너무 과하게 치중하게 되면그것은 서구 민주와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고과연 민주라는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인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이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여러 논쟁에서 쟁점이 되는 사안이기도 하다이러한 논쟁을 더욱 잘 이해하려면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역사적 비교의 시야에 두고 보아야 한다사실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논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과거 담론 체계에서 핵심은 서로 다른 민주 패러다임 간의 논쟁이 아니었다가짜 민주와 진짜 민주 간의 논쟁이었고자본주의 사회의허위적’ 민주와 사회주의 사회의 진실된’ 민주간의 논쟁이었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설사 소위 민주제도라는 것이 존재할지라도 그것은 자본계급이 자신의 계급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라 여겨졌다자산계급 통치를 전복시킨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전체인민 또는 무산계급의 통치가 있을 수 있고그것이 진정한 민주였다.


오늘날 민주 패러다임의 논쟁이 이처럼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계급투쟁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이것은 분명 긍정적인 방향이며중국 공산당의 방침과도 일치한다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불러 온 가장 큰 부정적 결과는 우리가 중국에서의 민주와 서방에서의 민주’ 간의 본질적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거나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본질적 차이는 이미 역사적 변화의 과정 속에서 반 이상 모두 소실되어버렸다따라서 민주의 중국 패러다임에서 우리는 민주’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공통성을 강조하기도 하고혹은 중국 패러다임에 초점을 맞추어 차이를 강조하기도 한다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연구자 개인이 어느 쪽을 더욱 중시하느냐에 따른 것이지 양자 사이에 학문적 원리나 법칙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수사(修辞)나 선전(宣傳)을 중시하면서 중국 패러다임을 강조하고 있다목소리가 충분히 크기만 하면 자연스레 비범한 내용이 담기는 것처럼 말이다.

 

민주의 허와 실

 

지역적 특색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민주 자체의 목적과 가치를 손상시킬 수 있다특색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과정 속에서 연구자는 의도적으로혹은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가치관을 부여할 수 있으며따라서 패러다임을 제도의 내용인 것처럼 서술할 수 있다탕야린(唐亚林)은 중국식 민주의 내용 재구성담론 서술그리고 발전 전략에서 민주정치의 근본적 논리의 출발점은 인류가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라 설명하면서, “이는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정치생활의 본질을 해석하려 했던 것인데좋은 정치적 생활이 좋은 생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소위 좋은 생활이란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그렇다면 중국인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24개의 글자로 표현할 수 있을 듯 한데, “풍족한 의식주평안한 삶즐거운 일들고 날 때 서로 벗하고 서로 협조하여 비상시에 대처하고나라가 평화롭고 백성이 편안하며 바람과 비가 알맞은 것이다.


물질적 생활의 보장이 민주정치 건설의 기본 전제인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설사 그렇더라도 민주정치의 내용이 그렇게 생기가 없을 수 있을까사실 탕야린의 글에서 언급되었던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는 좋은 삶을 물질적 생활이 아니라 그 보다 한 차원 높은 어떤 것으로 간주하였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등장한다. “도시국가의 발전은 인류의 생활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며그러한 실제의 존재는 또한 좋은 생활을 위해서이다.” 앞의 생활은 주로 물질적 측면에서 만족을 뜻하고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좋은 생활은 정치적 생활을 의미한다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언의 기원이다이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몇 가지 종류로 나누었다도시국가 공민노예부녀 및 어린이 등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인(공민)과 노예 간의 구분이었는데자유인이 완전한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도시국가의 정치생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가 물질적 측면에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반대로 노예가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타인에게 종속된 사람이었고 말할 줄 아는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주의해야 할 사실은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의 물질적 생활수준이 결코 형편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어떤 경우 노예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고,심지어 매우 좋은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도구에 불과했다누가 통치자이고 누가 피통치자인가의 구분이 명확했던 것이다통치자(즉 도시국가의 공민)들이 일종의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맑스의 논의에서도 이러한 정치참여가 좋은 생활에서 갖는 의미가 찾아질 수 있다공산당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노동자 혁명의 첫발은 무산계급이 통치계급으로 변하면서 민주를 쟁취하는 것이다”, “각종 계급 대립이 존재하는 자산계급의 구()사회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이다.” 여기에서 민주의 기본 내용은 인간의 자유이지단순한 인간의 물질적 필요가 아니다사실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인간의 물질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줄곧 민주가 필요치 않았으며,기본적으로 민주와 상관도 없었다게다가 이러한 필요가 인간들이 주관적으로 정의한 것일 경우우리는 이러한 필요와 민주정치생활을 함께 연계시키는 다른 무언가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만일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특히 물질적 필요)만을 가지고 정부를 평가한다면이 정부는 아마 권위적인 정부가 될 확률이 높다기껏해야 선의를 가진 권위적인 정부일 것이고 민주정부는 아닐 것이다이때 정부와 민중의 관계는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와 유사할 수 있다부모는 자녀의 이익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심지어 자녀의 이익을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둔다그러나 부모는 자녀가 가정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민주와 부권주의 간의 중요한 차이는 정부가 민중의 필요를 살피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정치에 참여할 공간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에 있다만일 민중이 단지 피동적으로 정부로부터 공급을 받기만 하고 정부를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 한다면그들은 성장하지 않는 자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성인이 되어 자기 운명을 결정해 나가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고 만다.


만일 필요라는 기준만으로 민주를 평가한다면중국 고대에도 민주는 실현되었다고 봐야한다맹자는 백성이 귀하고,사직(社稷)은 그 다음이며 군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고, “백성이 근본이라고 하였다이는 고대 유가의 전통적 이상이다그러나 민주와 민본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진야오지(金耀基)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민본사상과 민주사상은 비록 서로 비슷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서로 통할 수는 있지만 한 몸이라고 할 수는 없다민본사상은 반드시 민치의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민주사상은 민치를 출발점으로 하며양자는 비록 약간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그 상황은 서로 다르다.” 만일 필요라는 기준만을 가지고서 논의한다면우리는 고대 민본정치와 현대 민주정치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패러다임의 실현

 

이러한 논의들은 우리가 중국에서 우리 자신의 민주정치를 건설할 필요가 없거나 혹은 건설하지 못할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반대로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의 사회적 상황이 매우 중요하다여기서 관건은 어떻게 민주와 지역 특색을 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명과 실본체와 패러다임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갈 것인가탕야린은 자신의 글에서 일종의 더욱 단단한’ 민주이론으로 단일한 제도적 의미의 민주이론을 대체하려고 시도하였다이러한 방식은 어떤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이러저러한 점들을 누락하기 쉽고이로 인해 지역성과 충돌할 확률이 높다인간의 필요는 늘 유동적인 것이라 시간 및 장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이론적으로 도출한 확정적 답안에 비해 언제나 넘쳐나거나혹은 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적 이상과 지역 특색을 어떻게 결합시켜야 할까우리는 어떻게 이론의 단편성이라는 딜레마를 피할 수 있을까정답은 아마 이론 중에서는 찾지 못할 것이다맑스의 관점에서 보자면중요한 것은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다또한 민주에 대해 말하자면가장 중요한 실천은 정치참여이다정치참여는 언제나 위험을 수반하는데인간은 급진적인 선전이나 구호에 유도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다인간은 또한 문인과 유사한 그러한 역할에 의해 선동될 수도 있다민주정치 또한 무질서와 비이성적 참여로 인해 동요될 수 있다그러나 정치참여의 경험은 오직 행하는 가운데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외 다른 방법은 없다만일 인간이 정치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일종의 추상적인 이론에 의해 유인될 수 있고질서 있는 민주정치의 실천을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오로지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만 인간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지역특색을 진정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그 가치관 또한 이러한 실천과 분리될 수 없다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영역 속에는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이론이 존재한다인간은 단일한 이론과 원칙을 가지고 복잡한 사물을 개괄하려고 노력한다그러나 일단 실천하면본래 갖고 있던 가치관과 관념이 필연적으로 개입되면서 실천을 주도하게 된다혁명의 시대에는 맑스주의가 토착적인 관념 및 습관과 결합하였을 때 진정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중국적인 맑시즘은 이러한 실천적인 혁명이론이지 그 이전에 존재했던 혁명이론이 아니다그렇다면 인간이 실천을 통해 정치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자연히 어떠한 지역 특색이 결합된 민주가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우리는 그것을 민주의 중국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여기에서 중국 패러다임은 정치적 참여를 실천하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지이론 속에서 체현되어지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사실 어떤 한 이론을 가지고 세계를 완전히 개괄할 수는 없다그것은 항상 실천 영역의 변화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다른 사회와 비교하였을 때중국은 정치 실천에서 경험과 연령 그리고 이력의 권위를 더욱 중시한다이것은 사람들이 정치지도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치 공동체에게 청사진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지 단기이익의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이러한 지역적 특색은 실제 정치 참여과정 중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실천 속에서는 이러한 민주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치관적 요인을 관측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사전에 주어진 가치판단은 모두 예측에 불과하다가령 실천 속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가치관도 드러내지 않을 경우우리는 그들이 이미 그 가치관과 서로 유리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인간의 가치 관념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이를 통해 인간의 정치적 참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가능한가정치적 수단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효과적인가아니면 사회 역량에 의존하여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가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민주의 중국 패러다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참여의 의미를 띤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다이론상의 예측이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결론

 

민주라는 이 개념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정치참여는 민주의 부정할 수 없는 기본 요소이며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민주와 비민주정치를 구분할 수 없다독재나 전제와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민주를 이해한다면정치참여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공동의 향유를 상징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내재적 가치를 구비하고 있다만일 정치참여가 단순히 어떤 목표(가령 물질적 복지)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그것은 분명히 다른 수단으로 대체될 수 있다그러면 우리는 정치생활의 좋고 나쁨그리고 자유와 전제를 판단하는 기준을 잃고 말 것이다.


민주와 지역특색은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가이러한 결합은 마땅히 민주정치의 실천을 핵심으로 해야 한다그 어떠한 이론상의 개괄은 모두 단편적이고 허약할 수밖에 없다민주의 중국 패러다임은 중국인의 정치참여 중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지이론가들이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돤더민(段德敏)/베이징대 정부관리학원 (번역: 서정경/성균중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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