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속 성균중국연구소

> 공지사항 > 언론 속 성균중국연구소

아주경제: [성균중국의 窓] 때로는 ‘사랑의 매’도 필요하다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8-01-25
  • 조회수 766

 [성균중국의 窓] 때로는 ‘사랑의 매’도 필요하다


2018년 새해 1월도 어느 덧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연말부터 새해까지 어김 없이 국내외 각 분야에서 지난해의 10대 유행어, 10대 사건, 10대 뉴스 등등 각종 랭킹이 매스컴을 통해 올라왔다. 중국도 비슷하다. 지난해 긍정적·부정적·중립적인 사건들은 골고루 ‘성균중국의 창(窓)’을 통해서 다뤘다. 사회학이라는 전공의 특성인지 개인 성격의 탓인지 필자가 접근했던 주제들은 긍정적인 화제보다 부정적인 사회문제나 현상들이 더 많았다. 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건지를 해석하려다 보니 문제점에 집중되고 자연스럽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과 태도를 갖게 된다. 결국 이러한 성격을 띠는 칼럼은 어머니의 코멘트를 불러왔다. 요약하면 내용은 너무 부정적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물론 중국은 아직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어마어마한 인구규모와 넓은 지역범위를 고려하면,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룩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부족함이 있어도 국민으로서 더 많이 이해하고 포용하며, 정부를 믿고 더 많은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중국 건국 이후 태어나 베이비붐 세대로서 밥도 배부르게 먹지 못했던 어려운 시대를 겪었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고속상장을 경험했다. 중국에서 가장 우여곡절 인생사를 남긴 세대라고 부르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사회변천의 차원에서 어머니 세대의 감명은 그 이전 세대나 우리 세대보다 더 깊을 것이다. 현재의 부족에 대한 불만보다 발전과 진보에 대한 감격이 더 많고 ‘과(過)’에 대한 비판보다 ‘공(功)’에 대한 칭찬이 더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다. 대체하거나 교환할 수 없는 별개의 문제다. 잘하는 것은 인정되지만 그것만 강조하면 잘하지 못한 부분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게 되기 쉽다. 해외에서 살다 보면 중국을 바라보는 것은 문 밖에 서서 문 안을 엿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다양한 소리를 듣게 되고 더욱 냉정한 평가를 접을 수 있는 기회도 많은 것이다. ‘잘나가는 중국’에 있어 중국인으로서 필자도 자부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과한 칭찬은 교만에 이르게 한다. 중국은 아직 교만할 때가 아니다. 다른 하나는 ‘공’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다. 구체적인 비유를 하자면, 학생은 공부하고 의사는 환자를 구하고 경찰은 도둑을 잡는다. 이와 같은 사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해당 직업이 존재하는 의미이고 성실하게 본직을 이행하는 것은 기본이 된다. 오히려 그러지 못했을 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중국 헌법에 규정돼 있는 국민이 법을 준수하고 근로하고 납세하는 등 각종 의무들을 잘 이행하면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 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사회 발전과 진보의 실현은 정부의 당위성에 속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잘하지 못한 부분을 채찍질하고 문제 개선과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에 관해서 대중교통비용의 예를 한번 보자. 필자가 생활하는 중국의 한 2선 도시 버스 요금은 회당 1위안(약 165원)이나 2위안이다. 지난 20년간 평균 소득이 약 10배를 증가한 반면 이 버스 요금은 그대로 유지해왔다. 쉽지 않은 일이라 칭찬할 수도 있지만, 시각을 다르게 봤을 때 20년 전에 교통요금은 주민소득에 비해 부담스러웠다는 사실이다. 대중교통은 공공서비스의 일환으로서 이익추구가 목표가 아닌데, 국민에게 보편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요금을 유지하는 것은 그 당시에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 정부가 취하는 적절한 조치라고 볼 수도 있다. 어머니는 현재의 저렴한 교통요금제를 칭찬한다. 그러나 이러한 칭찬은 20년 전 국민들의 불평에서부터 시작하고 정부의 정책 시행을 통해서 이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칭찬이든 지적이든 궁극적으로 국가가 더 발전하고 생활은 더 좋아지는 것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국민으로부터의 불만과 불평, 정부의 부족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있으니까 개선의 계기가 되고 언젠가 칭찬을 얻을 수 있는 전제가 된다. 오늘의 중국에 있어서 사랑의 ‘매’는 더욱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자국에 대해서, 정부에 대해서,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사건들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국가의 발전과 진보에 대해서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많이 칭찬하는 것도 좋고, 사회의 부족과 문제점에 대해서 걱정하고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으로서 자국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고 국가에 대한 ‘사랑’을 갖는다는 것이다. 국가에 있어서 ‘국민의 사랑’의 반대말은 ‘사랑의 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다가온 2018년에 한국과 중국이 모두 더 잘되기를 기원해본다.


천천(陳晨) 성균중국연구소 책임연구원(사회학 박사) 


원문: http://www.ajunews.com/view/20180107230759163

목록





이전글 뉴스토마토: (시론)새해 중국 개헌논의 시진핑 신사상 반영...
다음글 아주경제: [성균중국의 窓] 평창 동계올림픽과 한·중 공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