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글로벌 시시각각] 시진핑 사상의 이름이 길고 긴 이유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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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28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막을 내리고 새 지도부가 선출됐다. 정치국 상무위원 6명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해 향후 5년 동안 중국을 통치한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에 한껏 높아진 자신의 권위를 유감없이 행사했다. 미래 100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당의 헌법인 당장(黨章)을 수정하고, 지도부를 교체해 자신의 권력 그림을 그려냈다. 시 주석의 권위는 지난해 10월 제18차 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그가 쟁취해 낸 ‘허신(核心)’ 지위가 받쳐주고 있다. ‘허신’이란 지위는 인사, 정책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번 당 대회는 시 주석이 ‘허신’ 지위에 오른 후 치르는 첫 당대회였다.
210분에 걸친 <보고>는 시 주석이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보고>를 연설하는 동안 90을 넘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차치하더라도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많은 참석자들이 피곤해 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물 한 모금 마시고 세시간 반을 소화했다. 시 주석은 그 긴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데 할애 했다.
핵심적 주장은 시대가 예전과 달라졌으니 이제는 새로운 이론과 사상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G2에 올라선 중국은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됐고 국내에서도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발전이 필요한 시기에 진입했기 때문에 이제는 기존과 결별하고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하자는 뜻이다.
<보고>의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마오쩌둥(毛澤東) 시기는 중국이 혁명을 완수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계속하기 위해 나아가던 시기였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했듯 좌경적 오류로 많은 피해를 봤다. 중국공산당은 자본주의적 방식을 가져와 사회주의를 재건하고 회복하는 길로 들어섰다. 바로 개혁개방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을 수 있다면 아무나 좋다는 생각이었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자본주의 방식이든 아니면 사회주의 방식이든 괜찮다는 사고다. 중국은 이를 실용주의적 사고로 포장하고 개혁개방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경제는 성장했고 사회의 부는 증대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명명했다.
신중국 건국 이후 마오쩌둥 집권 30여 년과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胡錦濤) 집권 30여 년 동안 중국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다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결과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질적 도약은 아직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머물러 있었다. 시 주석은 중국이 처한 상황이 이제는 변했다고 보고, 이번 당대회를 변화된 정세에서 새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보고>에는 ‘역사적 사명’, ‘역사적 변혁’, ‘역사적 분기점’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했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번 당대회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회여야 했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은 사상의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사상이란 매우 함축적이며 압축적인 표현이어야 한다는 일각의 기대를 뒤로 하고 매우 긴 이름을 가진 사상이 탄생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그 원류를 마르크스 기본원리에서 찾고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중국 현실에 적용한 것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이고 그 사회주의가 새로운 정세에 맞게 변화한 것이 바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다. 그 핵심은 바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그리고 사회주의이다. 시진핑이 주도해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고, 중국만의 고유함을 갖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왜 지금 꼭 필요한지는 긴 사상의 이름 속에 모두 들어있다.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최정점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사상이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이후 다시 100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시대에 지금 그 사상적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역사 인식이 담겨 있다.
이름 석자를 넣은 사상을 당장에 넣을 정도로 시 주석의 권위는 매우 강해졌다. 강력한 권위는 인선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시 주석은 정치국 상무위원 구성에서 후계구도를 명확하게 내세우지 않았다. 관례나 관행을 깬다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신시대라는 명분 그리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과도기로서 19차 당대회가 갖는 역사적 사명을 십분 활용해 관행을 폐기하지 않고 내용의 변화를 유도했다.
그 결과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를 정치국 위원으로 올리면서 양자 구도 후계 시스템의 균형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후춘화(胡春華)는 자연스럽게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지 못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로써 양자 구도의 후계시스템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유예되는 그림을 만들어졌다. 향후 시 주석이 어떤 후계 그림을 그려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단 격대지정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행 파괴의 리스크를 일정 부분 피해간 측면이 있다.
‘7상 8하’ 관행은 충실히 적용돼 18대 정치국 상무위원 5명의 은퇴를 이끌어냈다.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거취와 관련된 정치적 논쟁은 일단락됐다. 시 주석 입장에서는 관행을 부분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인사 구도를 관철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관행이 깨어졌다. 이와 관련해 왕후닝 당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한 것이 흥미롭다. 신시대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과 확산을 위해서 그에게 중대한 임무를 주려는 것일 수도 있고 내부 교통정리가 되지 않아 무색무취의 그를 올렸을 수도 있다. 왕후닝의 궤적은 최고지도부로 승진하려면 적어도 지방 2, 3곳을 근무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불문율과 차이가 있다. 이는 향후 시 주석이 인사권을 행사할 때 그만의 새 관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한중관계의 돌파구로 당대회를 바라봤다. 중국의 정치 일정이 안정되면 한중관계가 변화될 계기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찾아올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보고>나 <결의> 그리고 시 주석의 여러 연설에서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조치나 정책이 보이지는 않는다. 당대회는 기본적으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다. 하지만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 성실 혜택 포용)을 얘기하고 평화발전을 거론하면서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강조했다. 추상적이지만 공동체 관계의 회복과 심화를 강조하는 것이 큰 흐름이었다. 우리도 한중이 협력할 수 밖에 없는 명분을 찾는 노력에 더욱 나서야 한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교수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261611001&code=970204